아래 글을 읽기 전, 이 글은 필자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길게 적어놓은 장문의 글이다. 오타쿠가 장황하게 설명하는 글 특유의 ‘그래서 그게 대체 뭔데?(소위 그뭔씹)’ 하는 부분들을 최대한 설명하려고 애썼으나 전해지지 않는 부분이 꽤 많을 것이라 짐작된다. 때문에 아래의 글을 다 읽기 보다는 아멜리아 왓슨이라는 버츄얼 유튜버의 새로운 출발이 잘 되길 마음 속으로 응원해주시고 해당 트윗에 마음을 눌러주시면 필자인 파란나비는 아주 좋아라 할 예정이다(?)
[1]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음
9월 30일(한국 시간 기준으로는 10월 1일 아침)에 홀로라이브 EN 소속 아멜리아 왓슨이 4년간 이어왔던 방송 활동을 중지하고 홀로라이브와 제휴 관계가 되었다. 공식 영어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이름 앞에 affiliation라는 단어가 붙어있고 일본어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방송활동 중단이라는 한자가 붙어있다. 나는 3년 정도 되는 기간 아멜리아 왓슨(이하 아메라고 지칭함)의 teamates(아메의 팬덤이름)으로 활동하며 아메를 오시(한국에서는 보통 최애라고 불리는 개념)삼고 팬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웃기게도 나는 영어를 정말 못한다. 기본 초중고 교육부터 시작해서 대학생 때도, 취준생 때도 영어를 공부했지만 내게 필요한 순간에만 익혔다가, 목표 근처께 성적을 받으면 싹 포멧해버렸다. 내 영어실력은 주기적으로 리셋되었으며, 구글 번역기와 파파고를 양손에 쥔 내게 있어 영어는 번역기를 돌리면 장땡인 외국어일 뿐이었다. 그런 놈이 영어로 방송하는 버츄얼 유튜버(이하 버튜버라고 표기)를 오시로 삼고, 아메가 더 이상 방송을 하지 못한다는 소식에 슬퍼하는 상황이 무척 아이러니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사실 예전에 나는 버튜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사람이 꽤 많지 않을까 싶다. 실제 방송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가 없으니 버츄얼 모델링 뒤에 숨어서 방송하는걸 탐탁치 않게 여길수도 있고(ex 아저씨가 보이스 체인저 키고 미소녀 모습으로 방송한다든가 하는 도시괴담), 버츄얼 모델링 자체가 기묘한 골짜기의 연장선처럼 느껴져서 별로일 수도 있다. 과거의 나는 후자의 경우로, 한참 발전 중이었던 버츄얼 모델링의 기묘한 통짜 팔다리와 머리에 고정되어 붙어있는 머리카락이 중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머리가 어떤 방향으로 돌아갔냐에 따라 맞춰서 움직인다든가 하는 모습이 참 이상하게 보였다. 그래서 예전에 한참 키즈나 아이라고 하는, 모든 버튜버들의 선조격인 사람(캐릭터?)가 나와서 영상을 올렸을 때도 본 적 없다. 버튜버의 모델링이 내가 보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캐릭터보다 안 예뻐서? 하여튼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처음 홀로라이브를 알게 된 건 21년 초에 친구가 한국어 자막이 달린 키리누키(방송 전체 영상 중 일부 재미있었던 부분을 잘라내 편집한 영상을 가리키는 뜻이며 한국에서는 보통 클립이라고 부른다)를 카톡으로 공유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맨 처음 보게된 아메 클립은 관심받고 싶어서 못된 말하는 시청자한테 패드립한 다음 쏘리 ㅎㅎ 하는 클립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내추럴 본 코리안답게 패드립에 큰 충격을 받아서 뭐지 싶었는데, 서양 문화권상 그렇게 심각한 욕설은 아니라고 해서 그 이후에는 신기하네, 그러고 넘어갔더란다. 그러다 나중에 아메가 september라는 노래를 부르는 클립을 봤는데 노래를 정말 신나게, 그리고 이상하게 불렀다(…) 박자랑 음정이 진짜 자기 마음대로였다. 근데 그 노래에 맞춰서 자기 모델링을 캐리커쳐처럼 만든? 이상한 모델링을 꿀렁거리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이런게 양키센스인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웃었던 기억이 있다.
(보실래요? 궁금하시면 이쪽 https://youtu.be/thMB1dXrlwo?si=hx2s5QLwEVJodUgq)
[2] 출구 없는 입덕 초기(팔불출 파트)
그 이후에 나는 아메의 유튜브 채널만 구독해둔 상태였고, 딱히 돈을 내고 멤버십에 가입한다든가 아메가 내 오시가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살았다. 생방도 본 적 없다. 영어를 모르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뿐더러, 나는 한국 스트리머가 하는 방송도 하이라이트 편집 영상이나 봤지 생방에는 들어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21년에는 코로나가 한창이었고, 그 때문에 회사가 더럽게 바빴다.(사측에서 보면 돈을 잘 벌고 있었다) 나는 4주에 한 번씩 토요일에 근무를 해야하는데, 그때 나 혼자만 출근해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무슨 노래든 핸드폰 스피커로 크게 틀어놓고 일할 수 있었다. 무슨 노래를 틀까 고민하던 차에 아메가 언아카이브 노래 방송을 하고 있다는걸 보고 들어갔다. (아카이브는 영상이 남아서 다시 볼 수 있으나, 언아카이브는 생방을 놓치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다시 볼 수 없다. 주로 저작권 문제가 있는 노래를 부를 경우 영상이 언아카이브가 된다) 홀로라이브 내에서 노래를 못 부르기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서 속칭 ‘가왕’라인으로 불리는 아메가 어떤 노래방송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너무 충격적이게도 나는 아메의 노래에(…) 완전 빠졌다. 삑사리도 많이나고 음정도 불안하고 박자도 자기 마음대로 맞추는데 흥은 가득차있는… 나는 이 사람이 무슨 말 하는지도 해석이 안 되는데, 고향친구랑 술먹고 노래방 온 기분이 돼서 그날 업무를 즐겁게 마무리 했다. 아마 그 즈음부터 멤버십에 가입했을거다. 아주 눈에 콩깍지가 씌인거지. 그 이후로 아메에 대한 클립과 정보글을 찾아보며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캐릭터 설정도 마음에 들었다. 홀로라이브는 ‘일본의 VR/AR 기술 회사 ‘커버 주식회사’의 버츄얼 유튜버 프로젝트 hololive 프로덕션 소속 여성 버츄얼 유튜버 그룹’으로 요약하면 ‘일본의 커버라는 회사의 여성 버츄얼 그룹’을 가리키는 말이다. 홀로라이브는 내가 알게 되었을 당시 JP(일본), ID(인도네시아), EN(그냥 영어권, 서양 뭉뚱그려서 지칭하는 듯함)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중 아메는 EN의 첫번째 기수 Myth의 멤버 중 한 명이었다. 왜 Myth(신화)라는 거창한 기수명이 붙어있냐면 멤버들이 하나같이 사신, 불사조, 상어 수인, 고대신을 모시는 여사제라서 그렇다. 그런데 이제 그 중에 아메만 혼자 평범한 사람인? 그 갭이 내 오타쿠 코어 취향을 저격했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특이한 존재인데 혼자 그런 특이한 존재들을 수사하러 온 탐정이라는 설정 너무 기가 막히지 않나? 물론 본인이 나중에 시간여행자라는 설정을 추가해서 마냥 평범하지만은 않은 사람이라는 캐릭터 설정이 되었지만, 여전히 불멸의 존재들 사이에서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는 필멸의 존재라는거 정말 달콤하고 맛있다.
이런 Lore라고 불리는 캐릭터 설정은 버튜버 데뷔 초기에 사람들에게 해당 캐릭터가 어떤 성향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지만, 이런 캐릭터 설정에 계속 이입하여 방송을 이어나가는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소위 캐이입으로 방송을 진행할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고, 결국 버튜버 방송을 보다보면 버튜버 캐릭터 안의 사람이 얼마나 매력적인가에 따라 코어팬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아메는 냉철해야할 거 같은 탐정 이미지는 상당히 빨리 실종된 편(…)이고 그 이후로 드러난 건 완전 빡겜충(…)스러운 면모로, 게임할때 욕도 하고 샷건도 친다(…) 방송 초기에는 그런 면모가 어그로를 끌기 좋아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밝혀진 색다른 모습(동기와 후배들을 자상하게 챙긴다거나, 3D 모델이 나오고 난 후에 보이는 동작이 무척 귀엽다거나 등등)을 통한 갭모에도 있었다 ㅎ
홀로 EN 1기인 Myth는 데뷔한 직후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퍼지는 바람에 일본 본사의 지원을 받기 어려웠다.(이후에 간접적으로 꾸준히 밝혀진 사실을 보면 EN 출범시에 사업을 제대로 하려고 했었는지부터 좀 의심스럽지만) 2D live모델로 할 수 있는 방송이 있고, 3D 모델과 모션 캡쳐 스튜디오가 있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방송이 있는데 3D 모델을 받으려면 일본에 가야했다. 근데 외국 곳곳에 흩어져있는 Myth 5명은 팬데믹 때문에 일본에 갈 수 조차 없으니 그런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메는 다양한 외부 기술자와 컨택하여 VR chat에서의 1주년 이벤트 방송을 기획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본 본사의 지원을 받기 힘든 EN소속 스트리머들이 다양한 방송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중가서는 모션 캡쳐 스튜디오까지 차려서 동기들의 3D 라이브 공연을 진행해주기도 했다. 방송 초기에는 자기보다 훨씬 재능이 많은 동기들(그림 실력, 노래, 춤, 다국어 소통 가능)을 보면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고 평가내리는 등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세간의 평가는 본사의 지원을 받지 못하던 시절 아메가 없었다면 지금의 Myth는 남아있지 않았을 거라는게 주류다. (그밖에도 아메가 버튜버 업계에서 이룩한게 너무 많지만 다 적으면 너무 설명충처럼 될까봐 못 적겠다.)
홀로라이브는 공식적으로 아이돌 버튜버라는 면을 강조하고 있다. 본질은 엔터테이먼트 쪽에 가까워서 방송이든 음악이든 게임이든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면 OK인 버튜버 소속사이다. (그래도 일단 아이돌이라고 내걸고 있어서인지, 주기적으로 Holofes라고 불리는 이벤트를 열어서 공연을 하고, 생일이나 데뷔 기념일 때 3D 공연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아이돌의 의미와 일본에서 쓰이는 아이돌의 의미가 다르다는걸 트위터에서 본 적 있는데, 우리나라에서의 아이돌은 완성형이어서 연습생 시절 완벽하게 기본기를 다져놓고 말 그대로 사람들의 우상이 될 만한 사람들을 선보인다. 일본에서의 아이돌은 초기에는 미숙하지만 점차 성장해나가는 모습까지도 대중들에게 공개하며 그들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나. 사실 나는 이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한국이든 일본이든 3D 아이돌을 안 봤으니까…) 그러나 아메도 그렇고 내 두 번째 오시인 이로하도 그렇고 두 사람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계속 응원해주고 싶어진다. 이게 내가 두 사람을 좋아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있겠지만, 누군가가 본인이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공유받고, 또 그렇게 노력한 성과를 함께 확인하며 기뻐하는 과정을 지켜보는게 나에게 무척 긍정적인 자극을 준다. (물론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을테고, 그런 면까지 시청자들과 공유하지는 않으니까 어쩌면 나는 보기 좋게 포장된 부분만 공유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 밖에도 다른 장점도 있는데(이하 생략)
[3] 다른 버튜버의 졸업을 보고…
위의 문단을 보면 21년도에 입덕한 이후 완전히 흠뻑 빠져서 몇 년 간 열심히 덕질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22-23년도 상반기에는 여전히 클립 정도만 찾아보고 생방을 보는 일은 적었다. 일단 미국에 사는 아메의 방송 시간은 대체로 아침이거나 점심 12시 시작이어서 평일에는 볼 수가 없었다(ㅋ) 그리고 막상 방송을 보러 가도 잉글리시 리스닝 테스트 nn분 같은 걸 듣고 있게 되니 내 오시 목소리인데도 졸렸다(…) 방송을 보는데 온전히 집중하고 있으면 뇌가 그걸 해석하는데 과부하돼서 방송을 오래 볼 수가 없었다. 마치… 똥컴으로 고사양 게임을 굴리는 것 같은 느낌…